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이어가고 있는 정상외교의 폭과 깊이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체코에 이어 다섯 번째 정상 통화 상대로 베트남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외교일정의 하나로 보기 어렵다. 베트남은 한국의 신남방정책 중심국 중 하나이자, 전략적 파트너로서 지속적인 경제·정치적 협력이 이뤄져온 국가다. 이 대통령은 6월 1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약 25분간 르엉끄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며, 고속철도, 원자력 발전, 기업 투자 보호 등 실질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향후 양국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발전 의지를 확인했다.
정상통화의 주요 내용 정리
이번 정상통화는 양국 정상이 직접 목소리를 통해 협력 의지를 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르엉 주석은 당선 직후 축전을 보낸 데 이어 통화에서 다시 한 번 축하의 뜻을 전달하며, 양국 관계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1995년 수교 이래 양국 간 교역, 투자, 인적 교류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심화를 강조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고속철도와 원자력 발전 분야에서의 전략적 협력이다. 한국은 고속철도와 원전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베트남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대규모 인프라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양국은 고속철도 건설, 원전 기술 이전 및 운영 협력 등에서 실질적인 성과 창출을 도모하기로 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르엉 주석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으며, 르엉 주석도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베트남은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의 동남아 거점 국가로, 양국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고속철·원전 협력의 전략적 의미
고속철도와 원자력 발전은 단순한 인프라 프로젝트를 넘어, 양국 간 기술 교류와 신뢰 구축의 척도다. 한국은 이미 한국형 고속철도(KTX)와 한국형 원전(APR1400)을 수출하며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UAE와의 원전 수출 성공 이후, 한국은 아시아 지역의 원전 협력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남북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계획을 추진 중이며, 향후 수도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의 고속철도 사업은 경제·정치적 상징성을 지닌 대형 프로젝트다. 이 사업에서 한국이 기술·운영·재정 지원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양국 관계는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선 실질적 동반자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원자력 분야에서의 협력은 베트남의 에너지 안보와 산업 고도화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탄소중립과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한국형 원전은 저탄소, 고효율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으며, 이는 베트남의 에너지 정책에도 부합한다.
기업 투자와 경제 교류 확대
이 대통령은 이번 통화에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활동 여건 보장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베트남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 이상의 실질적인 요청이다. 베트남은 한국의 3대 수출국 중 하나이며, 한-베트남 간 교역 규모는 연간 약 800억 달러에 이른다. 또한,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으로, 누적 투자액은 900억 달러 이상이다.
특히 제조업, 전자산업, 부품소재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의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타트업, 디지털 경제, 바이오 산업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 기업의 사업환경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외교적 조치로 볼 수 있다.
외교 일정 조율 및 아세안 전략
르엉 주석은 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요청했으며,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적극 화답하며 향후 APEC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고위급 교류 확대를 제안했다. 이는 양국 간 교류를 상징적인 차원에서 실무적이고 정책 중심의 논의로 전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는 이재명 정부의 동남아시아 전략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 속에서, 한국은 ‘탈중국’ 공급망 재편과 ‘신남방+ 전략’ 등 다자외교의 중심축으로 아세안 국가들을 설정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 전략의 중심축이며, 전략적 요충지로서 한-베 관계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아세안 전체에 대한 신호 효과도 매우 크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의 새로운 지평
이재명 대통령과 르엉끄엉 주석 간의 첫 정상통화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양국 관계의 심화와 전략적 협력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고속철도, 원자력, 기업 투자, 고위급 교류 등 구체적인 협력 의제가 언급되었고, 양 정상은 실질적 성과 창출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이러한 외교적 행보는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기술 수출에도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한다. 향후 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과 관련된 후속 논의, 그리고 고속철 및 원전 프로젝트의 실무 추진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통화가 보여준 상호 신뢰의 기반 위에, 양국이 실질적 이익을 공유하고 정치·경제·안보 등 모든 영역에서 포괄적인 파트너십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외교가 추구해야 할 미래지향적 모델이며, 아시아 중심의 균형외교의 실질적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